낸시와 혼녀
나는 내 나이나 생일을 모른다. 내 어머니가 내게 지어준 이름도 모른다. 6.25 전쟁 당시 미군과 한인 여성 사이에서 혼혈아로 출생된 나는 아마도 1950 년에서 53 년 사이에 내 생년월일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다. 내 운전 면허증에는 ‘낸시’ 라는 이름과 1952년 9월 15 이란 생년월일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것은 내 양부모가 정해 준 것이다.
나는 7 살 때 양부모를 따라 한국 땅에서 미국 땅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 와서 오늘까지 살고 있고 줄 곳 내가 한인의 피가 섞인 혼혈아란 사실을 잊고 있었다. 1970년 중반부터 한인들이 이 지역에 몰려오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내가 혼혈아란 의식을 새롭게 기억 속에 떠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곳곳에 늘어나는 한인 마켓 트며 상가들을 보면서 야릇한 감정의 요동을 경험하고 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한인 교회들도 더러는 대형 교회로 부흥하면서 이 땅의 시민들과 어깨를 겨루는 당당한 코리안 아메리칸 으로서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을 본다. 나는 한인 혼혈아로서 당연히 그들을 향한 남다른 애정을 느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생각할수록 쓰디 쓴 액체가 내 내장을 헤집고 올라오는 느낌이다. 혼혈아이기에 멸시와 천대를 받았고 또 버림받고 쓰레기처럼 짓밟혔다. 오늘도 내 기억 속에 시퍼렇게 살아있는 그 상처들은 자극을 받을 때 마다 가해자들을 향한 앙금을 피워 올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어린 시절을 생각조차 하기 싫어한다. 그 아픈 과거들이 잠시라도 내 생각의 표면에 떠오르게 되면 내 세상은 온통 먹구름에 덮이고 천둥 번개 치며 쏟아져 내리는 폭우 속에 짓밟힌 어린 나무처럼 비참해 지기 때문이다.
나는 한인들의 검은 머리가 싫다. 티 없이 고운 여인들의 베이지 살색도 싫다. 그들의 군살 없는 작은 몸집이며 진실을 미소속에 감춘 듯 비밀스럽게 웃는 모습이며 가냘프게 애교스럽게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다 역겹다. 그들 역시 나를 싫어하고 멸시하며 나의 금발 머리와 초록색 눈을 천하게 여기는 것 같기 때문이다. 현 시대에 선풍을 일으키는 서양문화를 따라 이젠 한인 여성들도 금발 머리나 연한 갈색머리로 염색한 것을 더러 보지만 왜 그들이 그처럼 멸시하던 내 금발을 지금 탐하고 있는지 의문도 되고 또 창자를 뒤트는 냉소를 던지게도 된다. 그토록 검은 머리만이 머리인 듯 금발을 멸시하든 그들이 서양 문화를 왜 받아드리게 된 것인지 그 변덕스러움과 흔들리는 동양예의지국의 지조를 나는 비웃고 싶은 것이다.
나를 세상에 내어놓은 여자도 검은 머리의 한인 여성이지만 나를 혼혈아로 탄생시킨 그녀를 나는 저주한다. 아무리 시국이 어려웠다 해도 사랑 없이 혼혈아를 탄생시켜 놓고 애견 한 마리의 가치만큼도 여길 수 없는 듯 길거리에 던져버릴 수 가 있었을까? 이러한 비틀린 감정 때문에 나는 혼혈인인 나의 근본 정체를 감추고 싶었고 미국 땅 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오늘 까지 순수한 백인으로 행세를 하며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백인으로서의 우월감과 아름다움과 또 행복만을 사랑하며 살고 있다. 그러한 내 눈 앞에 밀려온 한인들은 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경험했던 악몽과 같은 내 어린 시절을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기 때문이고 한인들을 볼 때 마다 잊어지지 않은 과거의 고통을 경험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