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가 보아도 아름답고 행복한 백인종 중년 여인이다. 나에게는 변호사인 아들과 대학교수인 며느리가 있고 그들 사이에 태어난 7 살짜리 사랑스러운 손녀 매리가 있다. 나는 대학 시절에 아이리쉬계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오늘 까지 ‘잉꼬 부부’ 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미술을 전공한 나는 미국 내에서도 인정받는 아티스트다. 사람들은 나를 복이 많은 여인이라고 말한다. 순풍에 돛을 달고 잔잔하고 아름다운 요람 속의 호수를 떠돌며 신선 노름만을 일삼는 사람이란 인상을 주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또한 상류층 컨트리클럽 멤버로서 귀부인 대접에 익숙해 있고 또 내가 속해 있는 미 장로교회에서도 반듯하고 모범적인 신앙인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나는 세상에서 좋다는 것을 다 가져보고 해 보며 살고 있다. 가장 좋은 저택, 고급 자가용, 명품 가구, 값 비싼 보석 그리고 사치스런 옷과 장식품들……. 그러나 나는 나 혼자만의 부귀영화에 치우쳐 사는 욕심꾸러기는 아니다.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며 구제 사업에 열성을 보이며 모금 운동에 활발히 내 정력을 쏟아 붓기도 한다. 단 한 가지 출생에 대한 비밀만 없다면 난 지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 내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 끔찍한 비밀! 50 여 년 동안 내 속 깊숙이 묻어두어 내 기억에서도 이젠 가물거리는 먼 꿈 이야기! 그러면서도 가끔씩 기억의 표면으로 잠깐씩 떠오르면 나는 곧 바로 가슴이 터질듯 한 슬픔 속에 허우적거리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 기억이 영원히 내게서 사라져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나는 가끔씩 설명할 수 없는 병에 시달리고 있다. 온 몸이 나른해 질 뿐 아니라 삶 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일상생활에서 손을 놓지 않을 수 없게 되는 병이다. 이 병이 돋질 때 마다 나는 깊은 슬픔의 수렁에 잠기게 된다. 며칠 몇날 때로는 몇 주 동안 침침한 방구석에 처박혀 식음을 전폐하고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다가 오열을 뿜는 통곡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처럼 깊은 잠속에 빠져 수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예외 없이 자살 충동에 사로잡힌다. 사랑을 받을만한 구석이 전혀 보이지 않는 나 자신이 버림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고 나는 세상에 없어져야만 할 사람이란 생각에 이르기 때문이다. 거울 속에 비치는 내 얼굴 생김새도 별 세계에서 온 괴물 같이 보인다. 모두 나를 괴물이라고 소리치며 어미 손가락을 내 얼굴을 향해 흔들며 놀리는 것 같다. 그뿐 아니다. 나는 마치 오물을 뒤집어쓰고 기어 다니는 냄새나는 구더기 같이 느껴져 모든 사람들이 나를 피해 도망쳐 버리는 것 같다. 그리고 내 몸에는 스물 스물 기어 다니는 더러운 균들이 득실거리는 것 같다. 나는 무서운 나병이나 암 병에 걸려 있을 것이라는 상상도 한다. 온종일 목욕을 하면서 살 속에 까지 스며든 더러운 병균들을 씻어내야만 깨끗해 질 수 있다고 느껴져 샤워를 틀어놓고 비누질을 거듭하며 수세미로 살이 벗겨질 정도로 비비며 때를 밀어내기도 한다. 이처럼 더럽고 추하고 못생긴 나를 사랑할 리 없는 남편은 거짓으로 나를 대하는 것 같다. 아들 며느리도, 나의 손녀 매리 까지도 모두 허위로 나를 동정하고 친절을 베푸는 것 같다. 최고급 가구로 채워진 환경도 모두 휴지 조각 만큼이나 가치가 없어 보여 단 순간에 허공에 날아가 버린다 해도 아무 미련이 없을 것 같다. 냉장고에 가득한 음식물도 모두 나를 죽이려는 독약 같다. 오직 캄캄한 방 의 공간만이 나를 감싸주고 가려주고 또 사랑해 주는 친구 같다. 멍하니 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내 눈 안 엔 검은 구름이 넘실거릴 뿐이다. 슬픈 느낌만이 내 머리에서 발끝까지 철철 넘쳐흐르는 강물 같다. 그래서 나는 강물을 출렁이며 뚝 을 넘어 흘러내리는 것 같은 눈물 과 함께 내 마음을 헤엄쳐 그 숨 막히는 슬픔에서 탈출하고 싶다. 그 슬픔을 눈물과 함께 떠내려 보내 줄 수만 있다면 나는 맑은 마음, 빈 마음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슬픔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강철 같은 껍데기로 봉쇄 되어 있는 느낌이다. 그 강철 껍데기 속에 숨어 있는 만 가지의 울부짖음과 굶주림은 마치 수백 마리의 구렁이들이 굶주려 꿈틀거리며 먹을 것을 찾아 회를 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창자가 등에 붙은 것 같은 허기짐을 느끼기도 하지만 음식의 굶주림 때문만은 아니다. 사랑에 굶주리고 인간대접에 굶주리고 빛에 굶주리고 인간애에 굶주리고 행복에 굶주리고 기쁨에 굶주린…….그러면서도 물 한 모금 넘길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모든 것을 거부하는 나의 실체를 알 수 없어 그냥 죽어 없어지고 싶은 것이다. 


한 은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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