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야로 공부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또 염원(念願)으로 어떠한 좌절과 멸시와 슬픔 고통도 이겨낼 수 있었던 나에게 그 꿈을 짓뭉개려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 나를 괴롭혔다. 그것은 15세가 된 나에게 중매가 들어오는 일이었다. 떡 파는 아주머니, 새우젓 장사, 옷감장사 그릇 장사 아주머니들이 삼촌 집을 드나들면서 나를 시집보내라는 권유였다. 15세에 이미 한국여자의 보통 키 에 달한 숙성한 나는 또 미모와 처순성을 보여 많은 사람들이 탐을 낼 수 있었지만 그보다 살림살이에 익숙하고 삼촌 집에 얹혀 산다는 환경의 약점 때문에 그런 내게 어울릴 것 같은 중매자리를 소개하고 싶어했다. 그 대상들은 사회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환경 적으로 약점을 지닌 자들이었다. 소아마비, 정신박약자, 홀아비, 유별난 홀어머니의 외아들, 노동꾼, 일자 무식자, 나이 많은 사람 등 다양했다.

    나는 그런 중매가 오고 갈 때마다 속이 거꾸로 뒤집히는 것 같은 모멸감에 시달렸다. 정상적인 환경 속에서 부모의 보호함을 받는 그 또래 아이들은 모두 공부에 열중하고 있을 나이다. 그러한 환경에 있는 또래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부러워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뒤늦게라도 찾아올 행운을 기원하며 소망가운데 미래를 꿈꾸며 살았다. (절대로 나는 시집가지 않으리라.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나는 공부를 꼭 해내고 말 거야. 그리고 사회에서 존경받는 훌륭한 인물이 꼭 될 거야.) 나는 입술을 깨물고 또 이를 부드득 갈곤 했다.

    삼촌 집에 붙어있는 옆집에는 늙은 어머니와 30 대의 아들이 살고 있었다. 그 할머니는 매일같이 삼촌 집엘 찾아와서 할머니에게 나를 달라고 졸랐다.

    “저 손녀딸을 우리에게 주시오. 내가 잘 거두어 주리다.”

    “지금 겨우 열다섯 살인데요. 요즘 어디 그리 일찍 시집보내나요?”

    할머니가 말했다.

    “이집에 손녀들도 많은데 하나쯤 빨리 보내는 것도 좋을 듯 싶은데.”

    옆집노인이 말했다.

    나는 이 노인만 보면 밥맛을 잃곤 했다. 키는 작고 딱 바라지게 생긴 노인인데 동네에선 이상한 소문이 계속 돌고 있었다. 그것은 이 노인이 아직도 아들을 품에 안고 잠을 잘 뿐 아니라 그 아들은 젖꼭지를 물고 잔다고 했다. 이뿐 아니었다. 그 노인은 아들을 네 번씩이나 결혼을 시켰으나 들어오는 며느리들마다 몇 달 후면 모두 보따리를 싸고 가버린 것이다. 그 이유는 아들이 새 색시와 잠을 자지 않고 항상 어머니와 함께 잔다는 것이었고 그 노인은 아들 부부가 한자리에도 함께 있지 못하도록 생활을 조정한다고 했다.

    “우리 집에 시집오면 편 할텐데. 단 세 식구뿐이잖아. 우리 아들 직장 좋겠다 돈 잘 벌겠다.”

    노인이 좋은 조건을 자랑했다. 그러나 나는 소름이 끼치도록 그 노인이 싫었고 그 아들도 싫었다. 내나이 15세- 나또래 아이들만 보일 때 였다. 노인의 아들은 30세가 넘었을 뿐 아니라 입이 옆으로 삐뚤어져 있었다. 더욱 나를 괴롭혔던 것은 그 아들이 나를 뒤따라 다니는 일이었다. 내가 물을 길러 가면 그도 뒤따라와 멀찌감치 서서 나를 주시하고 있었고 우물에서 야채를 씻거나 개울에서 빨래를 하면 따라다니면서 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 속 은 뒤집혔고 구토증을 일으켰다. 어느날 할머니와 삼촌댁이 말했다.

    “그 집으로 시집가거라. 너 그러면 시계라도 하나 얻어 찰 수 있을지 아냐? 삼촌과 의논을 해야겠다.”

    삼촌댁이 빈정거리듯 말했다.

    “난 죽어도 시집 안가요. 차라리 죽어버릴 거예요. 난 공부만 할 거예요.”

    나는 진저리를 치며 대답했다.

    삼촌댁은 나를 필요했다. 새벽 5시부터 자정 시간까지 살림을 했고 여름이면 양산공장에서도 첨가 일을 했던 나를 아무데도 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눈에 가시처럼 느껴지는 나의 존재를 최악의 조건 속에 보내버리는 것 또한 마음 통쾌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어디 그 집에 들어가 살아봐. 그래도 우리 집 은 양반일 게다. 여기가 좋았다고 생각할거야. 그 노인네 보통이 넘는 노인네인데 어디 가서 고생 좀 해 봐. 공부 할 거란 꿈 두 깨고.....제 주제를 알아야지....”

    삼촌댁이 비웃는 듯 말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분노에 마음을 떨고 있었다. (아버지가 안다면 얼마나 슬퍼할 가?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는 나에게 더욱 비참한 미래로 밀어넣고 싶어하는 삼촌댁에게 아버지는 무어라 할 가? 아 나는 공부를 해야해. 공부를! 난 절대 시집가지 않을 거야. 일생동안 혼자 살 거야. 꼭 복수를 해야해.)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침 다니러 온 삼촌댁의 친척 아줌마가 한마디했다.

    “저 아이가 얼마나 귀한 애이었어요. 제 아버지가 들었으면 기절했겠네요.”

    “그러나 누가 그렇게 일찍 죽으라고 했어? 자기 새끼는 자기가 키워야지.”

    삼촌댁이 말했다.

    “살고 죽는 것이 마음대로 돼야지....제들을 두고 눈이 감겼겠어요?”

    아줌마가 또 말했다.

    “저 에미년이 죽일 년이야. 지 새끼를 왜 남에게 맡기고 저 고생을 시키냐고....미친년이지.... 내가 무슨 죄가 있어 이 고생을 해야해?”

    삼촌댁이 또 지지 않고 말했다.

    “자식 키우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지....우리 정란이 좋은 학교 보내려고 참 과외 비도 많이 들어갔어요. 언니는 용해. 딸 들 이 넷이나 되는데 다 공부시키고....”

    아줌마가 말했다.

    “우리 딸 들 모두 일등만 해. 모두 최고로 좋은 학교를 보내야 할 텐데....그래야 최고 신랑감을 얻지. 시집들을 잘 보내야해 여자아이들은 말야. 그것이 우리 어머니 된 책임이야.”

    삼촌댁이 말했다. 이렇게 주고받는 두 여인에게 관심이 없는 듯 나는 초점 잃은 눈동자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들의 말은 내 의식세계를 칼로 후벼대는 듯 가슴 쓰리게 했다. (엄마가 없는 나이기에 시집을 아무렇게나 가도 괜찮단 말인가? 부모가 있어야만 최고 학교를 갈 수 있고 그 목적은 또 최고 신랑감을 얻어주기 위한 것이란 말인가? 부모가 없으면 멸시받고 천덕꾸러기가 되어 공부도 할 수 없고 또 좋은 신랑감도 기대할 수 없는 운명을 당연하게 받아드려야 하는 것일 가?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어떻게 마음대로 된단 말인가? )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삶 을 등지고 싶었다. 구토증이 났다. 그리고 밥을 먹지 못하면 시름시름 기운을 잃어갔다. 짓밟힌 자존감에 대한 분노의 감정은 끊임없이 끓어올랐고 그 어떠한 복수도 할 수 없는 현실 이기에 눈물만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 눈이 붓고 또 부어 올라도 눈물은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한 은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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