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소원 공부

정아는 14 세의 소녀가 되었다. 검게 때묻은 베이즈 색 인민군 웃옷에 꼬매 고 또 꼬매 입은 검은 치마는 그 자체가 가난함을 내보이는 채색모양을 하고 초라하다못해 가련한 모습으로 정아를 장식해 주고 있었지만 그의 검은머리는 기름졌고 그의 목덜미는 귀티가 역력했으며 하얀 살결에 미모의 아름다움이 마치 가시덤불 속에 봉우리를 살짝 열어 보이며 피어나는 한 송이 청아한 백합화 같았다. 그의 하는 일 들은 그의 옷차림에 어울리는 천하게 보이는 것들이었다. 물지게를 지고 빨래를 하며 김치를 담그고 밥을 짓는 그런 일 들....그의 나이 또래 아이들은 단발머리에 짙은 남빛 스커트와 풀을 매겨 빳빳하게 대려 입은 눈송이처럼 새하얀 부라우스 그리고 운동화 차림으로 책가방을 들고 친구들과 재잘대고 활짝 핀 웃음으로 깔깔거리며 학교를 드나드는 것이 정상이었다. 시장에서 반찬거리를 사들고 오는 정아 앞에 이런 학생들이 재잘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얘 나는 말야 아침에 우리 엄마가 나를 흔들어 깨울 때까지 잔단다. 밥 다 차려놓고 빨리 일어나라고 야단법석을 떨면 마지못해 일어나거든. 내가 밥을 안 먹겠다면 우리 엄마 더 난리야. 밥을 입에 떠 먹여 줘. 그리고 식모가 물 떠오면 세수하고....난 집에서 아무것도 하는 일 이 없다.”

새 하얗고 매끄럽게 생긴 손을 가진 학생 하나가 재잘댔다.

“얘 나도 그래. 우리 엄마가 다 해줘. 내가 또 용돈 달라면 한번도 거절하지 않고 다 준다.”

경쟁이라도 하듯 다른 학생이 뒤이어 말했다.

그들은 명랑했다. 구김살이 하나도 엿보이지 않는 맑은 하늘과 같았다. 정아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서글퍼졌다. (나에게도 저런 삶 이 단 하루만이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행복할 가? 저 유니폼. 입어보고 싶어. 저 책가방 나도 들고 싶어. 저 운동화 나도 신고 싶은데....) 정아는 자신의 신발을 내려다보았다. 고무신이 낡아 옆으로 구멍이 나 있었다. 손을 보았다. 손 목에까지 한 겨울 동상으로 인해 새파랗게 멍 이 들어있는 듯 하얗고 매끄러운 손은 평생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소매를 몇 겹으로 걷어올린 커다란 인민군 복....정아의 몸을 휘감고 있는 그 맞지 않는 옷 은 정아의 아름다운 십대의 자태를 감추어 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밖에 사촌 정이와 함께 나가면 아이들이 떼를 지어 좇아 다니며 놀려댔다.

“흰둥이 검둥이 어디를 가느냐....”

산 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는 냐? 란 곡을 붙여 놀려대곤 했고 살결이 유난히 희어 보이는 정아와 함께 하면 한층 검어 보이는 정이를 아이들이 놀릴 때마다 그는 분노로 흥분했었다. 그는 뒤 돌아서서 아이들에게 돌을 던지며 대항했지만 아이들은 더욱 재미있다는 듯 깔깔거렸다. 이러한 놀림을 견딜 수 없어했던 정이는 아버지 어머니에게 눈물로 화풀이를 했다.

“왜 나를 이 모양으로 낳았어? 새까맣게 말야. 낳지를 말지 왜 낳았어. 나 죽고 싶어. 하나가 검으면 흰 사람하고 결혼했으면 이렇게는 검지 않았을 것 아냐?”

이러한 정이를 위해 삼촌은 좋다고 하는 표백 약은 다 구해 다가 정이 에게 주었으나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왜 나를 이렇게 까맣게 났냐 말야?”

정이는 늦게 귀가한 삼촌 앞에서 뒹굴면서 소리쳐 울었고 극도로 자극이 된 삼촌은 일어나 동네로 나갔다. 할머니와 삼촌 댁 이 뒤따라 나갔다. 그들은 자기 딸을 놀려주어 울게 만든 아이들을 색출해 내어 혼을 내 주겠다는 심산(心算)이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 이였다.

“야 이놈 나와라. 네놈이 내 딸을 놀린 놈이냐? 이집 못된 아들녀석을 내보내시오. 자식을 어찌 길렀기에 그런 못된 짓을 하게 한단 말이요. 어서 내 보내시오. 이 못된 자식을 그냥 두지 않겠오.”

삼촌은 고래고래 소리쳤다. 할머니도 옆에서 거들었다.

“이리 나와서 이야기 좀 해 봅시다. 당신 집 아들녀석이 우리 딸을 얼마나 울렸는지 알아요? 그냥 두지 않겠어요. 목을 비틀어 버려야지....”

삼촌댁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아니 왜들 이러세요? 한 밤중에 홍두깨지 원....왜 그래요 왜?”

안에서 여주인이 나와서 연유를 물었다.

“당신 아들이 우리 딸을 검둥이라고 놀렸답니다. 한참 예민한 나이에 그렇게 놀려주면 애들이 어디 견뎌내겠어요? 교육을 바로 가르치세요!

삼촌댁이 또 소리쳤다.

“그놈을 내 보내시오. 내가 모가지를 비틀어 놀 테니깐....”

삼촌이 또 소리쳤다.

“아니 아이들 장난을 가지로 저렇게 난리야. 쯧쯧....”

동네 사람들이 몇 명 밖으로 나와서 구경하면서 수군거렸다.

삼촌과 삼촌댁 그리고 할머니는 동네 남자아이들이 있는 집을 찾아다니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놈들 다시 이런 짓 하면 모가지를 비틀어 버릴 테다.”

그래도 아이들은 놀림을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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