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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열명 문둥병자 중 하나였습니까? (눅 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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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495 | | 2009-1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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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악인을 쓰시는가? (하박국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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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487 | | 2009-1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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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없는 신앙생활 지키도록 (딤전 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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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488 | | 2009-0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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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공의가 여러분의 마음에? (아모스 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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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530 | | 2009-0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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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눅 1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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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703 | | 2009-0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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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의 길 (눅 14: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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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691 | | 2009-09-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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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은 은혜 받은 자의 표징 (마 23:1-12, 눅 1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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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741 | | 2009-0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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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눅 13: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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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918 | | 2009-0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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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경주를 마칠 때 까지 (Race of the faith) 히 1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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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869 | | 2009-0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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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얻는 만가지 축복 (Blessings with Faith) 히브리서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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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861 | | 2009-08-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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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구별된 삶 (골 3:12-17) Christia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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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893 | | 2009-08-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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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으로 충만 (Fullness of Christ) 골 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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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757 | | 2009-07-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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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하지 못하실 일 이 있으신가? (왕하 4:8-17) In God nothing is imposs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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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780 | | 2009-0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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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알면 하나님을-If you know Jesus....(골 1: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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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763 | | 2009-07-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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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품의 약속- The Promise of Mother's Breast (사 6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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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729 | | 2009-07-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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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What can we do with our freedom in Christ) (갈 5: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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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623 | | 2009-0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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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삶-새로운 눈, 마음, 자세로 - New Life (갈 3: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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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611 | | 2009-0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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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복음을 쫓는 자 (갈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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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595 | | 2009-06-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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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 (계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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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614 | | 2009-0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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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속에 빚어지는 새 생명 ( 롬 8: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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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607 | | 2009-05-31 |
다른 복음을 쫒는 자 (갈 1:1-10)
우리 민족은 불과 100 여 년 전 미국과 유롭으로부터 복음을 전수 받았습니다. 선교사들은 복음에 관한 불타는 심령을 가지고 우리에게 와서 자신을 희생시키면서 또 순교하면서까지 우리 민족에게 그 복음의 뿌리를 내려 주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그 복음은 사도바울이 전한 순수한 복음 - 즉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00여년이 지난 오늘 그 복음을 전해주었던 나라들은 자유주의 신학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국이나 유롭의 교회들은 오늘날 교인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또 문을 닫는 교회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 대한 지식을 알 고저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으며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무엇인지 혼돈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면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고 말을 합니다. 교회 출석도, 성경에 대한 지식도 알지 못하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 믿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독교인으로서의 행위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이 변해가면서 더욱 그 행위에 대한 것은 외면하며 ‘믿음’만 선포하면 된다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죄인의 죄짐을 지고 십자가를 지신 것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 -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생활이 비기독교인 들보다 다를 것이 없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3:36 절에 보면 믿음과 순종이 함께 가며 또 히브리서나 로마서의 구원은 야고보서에서 말씀하는 행위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만 내세우면 가짜 믿음이 될 수 있고 행위만 내 세우면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으로 사는 사람이란 것입니다.
우리는 물론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얻습니다. 죄 사함을 얻음으로 죄에서 자 유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은혜, 곧 거저 주시는 그 은혜만을 주장하게 된다면 ‘방종’ 하기 쉽습니다. 죄에서 자유 함을 주셨으니 그 어떠한 죄를 지어도 다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믿게 됩니다. 물론 끊임없이 용서해 주시는 은혜가 십자가 안에 있습니다만 꼭 ‘회개’ 가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개’ 란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서 ‘의’ 의 길로 다시 들어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죄인’의 길에서 ‘악’ 의 꾀에 물들어 살며 그러므로 하나님을 져버리는 ‘오만’한 삶 을 살 때는 ‘악인’ 으로 사는 것이지만 ‘회개’ 하고 ‘의’이신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그분의 ‘선하시고 거룩하신 길 에 들어서는’ 삶 을 살 때에 ‘의인으로 인정’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의인’ 에게만 구원이 있습니다.
요즘 세상을 ‘말세’라고 말합니다. 악이 들끓는 세상이 되어 세상이 파멸될 것이란 뜻입니다.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하는 양심이 무디어져 있습니다. 말씀을 어기며 살아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회개’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 은 ‘행위’가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 는 사단이 그 왕 노릇을 하고 있고 ‘의’ 는 예수님이 그 왕 이십니다. ‘죄’ 속에 있는 것은 사단의 권세에 매여 있는 것이고 죄에서 자유 함을 얻는 것은 ‘의’로 옮겨진 삶 을 의미합니다. 죄 는 사망이요 의 는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에 매여 죽은 영혼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시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죄의 사슬을 끊어 주시고 ‘의’ 이고 ‘생명’ 이신 당신의 은혜 앞으로 믿는 자들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 크신 은혜를 믿고 받아드리는 사람들은 그 은혜가 감사하여 그 은혜의 주 앞에 자신을 맡기며 감사하고 찬양하는 삶 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값싸게 받아 드려 ‘믿는다’고 말하며 여전히 죄악과 짝하여 살고 있는 사라들이 있는가 하면 ‘믿는다’ 고 말하면서도 은혜를 은혜로 받아드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통하여 구원을 얻게 된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면서도 항상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헌금을 안하면 벌 받을 가 두려워서 하게 되고 교회를 빠져도 벌 받을 것이 두려워 열심히 참석합니다. 즉 자신의 행위가 구원과 관계가 밀접하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기에 ‘행위’에 중점을 두고 삽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운 하나님으로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러므로 자기 의 에 빠져들기 쉽습니다. 바리세인들처럼 하나님 앞에 자신을 자랑하는 기도를 올리게 됩니다. (눅 18:11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이렇게 자신의 ‘의’ 를 내세우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이신 예수그리스도가 필요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그처럼 의로운데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의 죄 짐을 질 필요가 있었겠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남 정죄하기를 잘 합니다. 그의 기도를 보아도 그는 자기는 세리와도 같지 않다면서 세리를 죄인 취급하고 자기는 의인 취급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와 반면, 세리는 가슴을 치며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기도 드렸습니다. 이 세리는 죄인으로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바란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죄 사함을 주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래서 이 죄인에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세리는 예수님의 은혜를 입고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엡 2:9 절에 보면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은 은혜로 주신 것이지 행위에서 난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합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은 바울을 통하여 확실한 복음을 받았지만 다른 복음에 영향을 받아 우왕좌왕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고 그분을 통하여 죄인들이 죄의 사슬에서 자유하게 되어 의 의 종으로 새 삶을 사는 새 피조물이 되었다는 복음을 분명히 듣고 믿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른 복음을 전하는 말 에 영향을 받고 율법주의로 빠져 들어 갔고 그래서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으로는 구원이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은혜로 보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므로 구원을 얻게 되는 새 복음을 버린 것입니다. 그러한 그들을 보면서 사도바울은 안타까웠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만 구원을 얻도록 약속하신 축복을 저버리는 그들에게 강력하게 말했습니다. 다른 복음은 ‘저주’를 초래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어느 탄광회사 사장에게 빚을 많이 진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빚 을 갚기 위해서 탄광에서 일생동안 일 을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관대한 탄광회사 사장은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어 빚 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 빚진 사람은 더 이상 탄광에서 빚을 갚기 위해 일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그에게 바람을 넣었습니다. 사장이 진정으로 빚을 탕감해 준 것이 아니라 더 큰 짐 을 지우기 위해 꾀를 자아낸 것이라고 충동했습니다. 사장을 의심하는 마음이 들어간 빚진 사람은 그 딴 사람의 말 을 듣고 탄광으로 다시 들어가 땀을 흘리며 일 을 계속했습니다. 사장이 믿어지지 않고 또 더 큰 빚 을 지울가봐 두려웠습니다. 사장은 진노 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주는 선대를 믿지 않았구려. 그러면 그렇게 계속 고생하십시오. 당신 평생을 고생해도 당신은 빚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그가 사장의 말을 믿었으면 자유 함을 누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베푸신 사장께 일생을 감사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갈라디아 사람들도 죄에서 자유 함을 주신 하나님을 믿지 못해 다시 율법의 죄짐을 지려고 한 것입니다. 그것을 본 바울은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현시대에 살고 있는 여러분과 저는 지금 받은 복음을 가지고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죄 의 빚을 탕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또 찬양하는 생활을 하시는지요? 아니면 아직도 죄의 짐을 지고 여러분의 ‘의’로 그 죄를 벗어버리려고 하는지요? 아니면 우리가 받은 무한한 은혜를 가치 있게 생각하지 않고 ‘죄인들의 삶’ 을 그대로 살고 있는지요?
복음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보내 주셨고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신 것을 믿고 받아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다시 심판주로 오실 것이란 사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는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분을 통하여 죄 사함을 받고 ‘의인’ 이 된 것을 시인하고 선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의’ 의 종 이 되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옛삶, 즉 마귀가 지배하고 왕 노릇하는 죄 의 삶 속에서 계속 머물러 있는 삶 이 아니라 새 생명의 주인 되시고 영원한 왕국의 왕 이 되신 예수그리스도께 속한 삶 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분과 세상 끝날 까지 동행하는 삶 을 살아야 ‘의인’으로서 새 왕국인 천국 문을 통과할 수 가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 이 있어도 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의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심판과 사망의 저주가 있을 뿐입니다.
한 은 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