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욕을 들으며 정신이 몽롱해 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때가 되도록 부모에게 “년” 자 소리를 들어 본 일이 없었고 저주하는 소리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우리 가정에선 내가 가장 여리고 예쁜 꽃 이였고 보물 이였다. 특별히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아버지는 나를 부를 때마다 귀하다 못해 존대 말을 사용했다.
   
[아버지……]
   
[오 예예―따님이십니까? 어서 오세요. 내 따님이 무엇을 원하시나요?]
    
아버지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즐거워하며 그를 찾아주는 딸이 황송한 듯 존대 말을 썼던 것이다.
   
그는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밥을 떠 먹여 주었고 목욕시키고 머리 빗겨 땋아 주고 옷 입혀 남대문 초등학교를 그의 손에 붙들고 날마다 오고 갔다. 나는 아버지와 무척 친밀한 사이였다. 아버지는 종종 나를 삼층 베란다에 데려가서 외국에서 수입해 드려온 과일을 까서 입에 넣어주며 역사 속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충성하고 헌신하며 정직하고 올바르고 훌륭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는 아브라함 링컨의 자라난 과정과 그의 신앙과 굳센 의지로 훌륭한 대통령이 되었으며 인종의 평등을 주장하여 미국의 주종관계를 무너뜨리고 정당한 인권을 찾아주는 놀라운 일을 했으며 한국사회에 존재하던 비 평등 관계나 주종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쳐 좋은 사회를 만들어 주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아버지는 새벽 5 시면 나를 데리고 남산 약수터로 올라가서 물마시고 맑은 산 공기를 마신 후 운동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의 등에 업혀 남산 돌층계까지 닿으면 잠이 깨어 그의 등에서 내려 돌층계를 뛰어오르면서 누가 더 빨리 가나 경주하곤 했다.
   
[아버지- 빨리 와!]
   
나는 아버지를 앞지르고 그를 빨리 오라고 소리쳤고 나를 못 이기는 척 그는 늦장을 부렸다.     
    
[응- 내 딸이 나보다 더 빨리 뛰는구나!]

    남산에 오르면 우리는 약수터에서 세수를 하고 약수 물을 마시고 또 물을 통에 담아 즐겁게 웃으며 집으로 돌아왔고 나는 소금물과 꿀물과 우유를 시간 맞추어 마신 후 학교를 가곤 했다.

    나는 단 한 번도 아버지나 어머니가 나에게 못 마땅하여 상을 찌푸리는 것을 보지 못했고 욕이란 더더욱 들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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