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양산을 만들었다. 삼촌 집에는 양산 직원이 3-4명 있었지만 나도 모든 살림살이를 부과해서 양산을 만들어 내야했다. 이렇게 나의 하루는 5시에 일어나 밥을 준비하는 일 로 시작해서 밤 11 시에 돌아오는 삼촌의 밥을 차려주고 1 시쯤 잠자리에 들어가는 것으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곤 했다. 어린 나이에 이렇게 무리한 노동을 하게 된 나는 때로 피곤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파리들이 욍욍대고 구더기가 기어오르는 냄새나는 재래식 화장실에 앉아 새우잠으로 피곤을 풀 때가 많았고 삼촌댁의 악 쓰는 소리를 들으며 화장실을 빠져나올 때가 허다했다. 너무도 피곤한 나머지 나는 종종 멈추지 않고 쏟아지는 코피에 시달렸다. 근방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아야 멈추는 일이 거듭 일어났다. 그때마다 의사는 6개월 “휴양”을 처방했다.

    나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지상 지옥”의 시간들은 매일 아침 6시부터 10 시까지 계속되는 삼촌댁과의 전쟁이었다. 삼촌댁은 눈을 뜨면서부터 나를 들볶았다. 아이들은 7 시쯤 학교를 가고 삼촌은 8시쯤 출근을 하고 삼촌댁은 10 시쯤 집을 나가곤 했는데 그는 그 시간까지 나를 향해 소리소리 질렀고 욕설을 퍼붓고 저주하며 잔소리했다.
   
[야 이년아. 이게 밥이냐? 정신을 어디다 팔아먹었어? 밥 이 너무 되잖아! 매일 하는 밥 하나 제대로 못하냐? 이 돌대가리야. 너를 어디다 써먹겠냐?]
  
 삼촌댁은 밥이 지니, 설거지를 더럽게 했느니, 빨래가 깨끗지 않다니, 풀을 제대로 먹이지 않았느니, 다림질이 엉망이라느니, 구석구석 먼지투성이라느니……. 끊임없이 불평하고 소리치며 볶아댔다.
   
빌어먹을 년. 망 할 년, 맹랑한 년, 미친년, 지어미 닮은 년, 싹아지없는 년…….욕이란 욕은 다 퍼부으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곤 했다. 내가 처음 이런 욕을 들었을 때는 방망이로 가슴을 후려 맞는 것 같아 아프고 정신이 몽롱해 졌었지만 시간이 가면서 의래 그러려니 하며 말없이 비실비실 웃을 때가 많았다. 그러나 내면은 병들어 가고 있었다.  삼촌댁의 이러한 태도는 동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인심을 잃어가게 했다.
   
[그 욕을 어떻게 다 먹고사니? 차라리 남의 집에 식모로 가렴.]
    [조카들을 저렇게 학대 할 수 있담? 저도 자식 키우는 사람이 사람의 앞날을 어찌 알고…….]
   
동네 사람들은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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