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검은 광목 치마와 인민군의 베이지 색 두꺼운 윗도리 하나가 일 년 사계절 입는 단 일복이었고 검은 치마는 떨어질 때마다 다른 천으로 꿰매어 조각조각 붙인 채색 치마가 되어 있었다. 또 톱밥 과 삼촌댁의 오빠가 경영하는 양화점에서 나오는 가죽조각으로 땔감을 쓰는 일 은 고약한 냄새를 풍길 뿐 아니라 많은 연기를 만들어 내어 나의 웃옷을 더욱 검게 물들여 주었다. 나는 그 옷을 마음대로 빨아 입을 수도 없었다.

    [빨아봐야 금방 더러워질 텐데 비누만 없앤다.]
    이러한 이유로 때 묻은 옷을 입고 다녔고 동네 사람들이 혀를 두르며 바라보곤 했다.

    하루는 딸 만 셋 있는 이웃집에서 입던 옷 을 한보따리 주었다. 집에 와서 풀어보니 좋은 옷들이었고 나에게 꼭 맞는 멋있는 고급 옷 들이었다. 나는 그것을 모두 다 입어보고 좋아하며 또 감사했다. 입을 비쭉거리던 삼촌댁이 그날 저녁 퇴근한 삼촌에게 그 사실을 보고했고 삼촌은 분노로 길길이 뛰었다. 그와 삼촌댁과 할머니가 한 떼를 지어 그 집으로 몰려가서 그 옷 보따리를 마당에 던져놓고 악을 썼다.
   
[내 조카를 내가 어떻게 키우든 당신들이 무슨 상관이야? 입히든 벗기든 당신들이 왜 나서느냐 말이야? 다시는 이런 짓 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요!]
   
그 집 아주머니와 딸 들은 기가 막히는지 혀를 두르고 있었다.
   
[정말 당신들은 기막힌 사람들이네요. 동네사람들이 당신들을 보고 뭐라고 하는지나 알고 계세요? 당신들 사람이 아니래요. 벌 받을 거예요 벌 받아. 하늘이 무섭지도 않으세요?]
   
[다시는 이런 짓 하면 이집에 불을 질러 버릴 것이니깐 알아서 하시오!]
삼촌은 씩씩 거렸다.
   
[원 별꼴을 다보겠네. 옷을 받았으면 고맙다고 할 줄 알았는데....... 조카를 저 꼴을 만들어 놓고도 부끄럽지도 않은지.......]
   
아주머니는 혀를 차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또 겨울밤은 추웠다. 건너 방 아랫목은 할머니와 딸 들 셋이 자는 곳이었고 맨 윗목엔 종호와 내가자는 곳이었다. 온돌로 된 방 은 아랫목에서 윗목으로 그 온기가 퍼져갔고 우리 남매가 자는 윗목은 차가워서 이불이 필요했다. 그들 모두에게는 이불이 있었으나 우리에겐 이불이 허락되지 않았다. 이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삼촌댁의 친정어머니인 양화점 할머니는 십대의 아들 둘을 인민군에 빼앗긴 후 늘 그들을 잊지 못하고 마음 아파하며 그들 생각을 하면서 우리 처지를 불쌍히 여겼고 그래서 두터운 이불을 선물로 준 것이 있었으나 그것을 이불장에 넣어둔 채 사용을 금지 시켰던 것이다.
   
[너희들은 고아들이라서 세상 고생을 연습해야 한다. 이불 없이 자는 것을 훈련해야 해…….]
   
할머니는 그런 이론을 내세웠다. 점심도 못 먹게 했다. 여름이면 밥이 썩어나가고 옷을 풀 먹이는 일에 사용할 밥 이 넘쳐나는데도 여전히 점심을 못 먹게 하는 이유는 항상 같았다.
   
[고아들이 먹을 것 다 먹고 입을 것 다 입고 어떻게 험한 세상 살 훈련을 할 수 있나?]
   
나는 부엌일을 하므로 음식을 몰래 먹을 수가 있었지만 종호는 배가 고프면 나의 주위를 돌며 밥을 얻어먹을 기회를 노렸다.
   
[종호 너 이따가 내가 점심 차릴 때 뒷문 쪽으로 살짝 와. 아무도 못 보게 알았지?]
   
종호는 들은 대로 부엌 뒷문에 나타났고 나는 누룽지며 주먹밥을 그에게 주며 어서 도망하라고 일러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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