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번리에 자리하고 있는 홀트 양자회는 커다란 대지에 건평 7 천 평이 넘는 곳으로서 어린 혼혈아들을 보호해주고 돌봐주며 미국으로 연결시켜 양자로 보내는 기관이었다. 이 대지를 들어서면 커다란 일층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어 모두 23 동의 건물들이 단지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러 개의 별관들을 또 보게 되는데 즉 숙소, 병원, 검사 실, 사무실, 입양 업무 실, 창고, 세탁소, 주방실, 사택들, 직원숙소들, 수위실, 자체의 수도시설, 발전시설 등으로 되어 있었고 간호사 보조간호원, 요리사, 청소부, 미국인 직원들 과 또 일을 돕는 소녀고아들…….보모들만도 150여명이 직원으로 일했고 아이들은 1000여명이 훨씬 넘었다. 나는 그곳에 10 대 고아 소녀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10대들은 전쟁고아들이었다. 그들이 머물던 고아원들은 가난하여 그들을 고등학교로 진학시키지 못했고 고아원에 머물러 있을 나이가 지났으므로 사회로 내보내야 했다. 그러나 편견이 심한 한국 사회에서는 그들을 환영하는 곳이 없었다. 또 좋은 집안과 좋은 환경을 따지는 문화 속에서 고아를 결혼 대상으로 탐탁하게 여기는 곳도 없었다. 고아는 고아들끼리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또는 장애자나 나이 많은 사람들 혹은 조건이 나쁜 사람들이 고작 결혼의 대상이었으므로 자존심 있는 소녀들은 평생 결혼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서기도 했고 또 착각에 빠져있는 소녀들은 환경 좋은 남자들과 연애를 하다가 부모의 반대에 부딪쳐 자살 소동을 일으키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10대들이 홀트씨의 관심과 배려로 양자 회를 들어오게 되었고 기관내의 여러 곳에서 근무하면서 야간학교를 다니게 되므로 자기향상을 가능케 했다. 또 미국인의 후원자와 연결을 맺게 해 주어 가족에 소속되는 기회를 경험케 했고 관심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해 주었다. 나는 이 10대 소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또 다른 미래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나는 안내인을 따라 양자회의 건물마다 돌면서 운영 방침과 직무에 대한 안내 설명을 들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또 혼혈아들을 바라보며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었다. 내가 경험할 새 삶 의 터전 ‘양자회’란 곳은 6.25 란 성난 폭풍이 쓸고 간 폐허 위에 사랑의 땀과 수고로 옥토를 일구어 상처입고 숨져 가는 어린 나무들을 따스한 손길로 심고 가꾸고 다듬어 생명의 꽃을 피우게 하는 아름다운 양지였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따스한 빛 아래 존재하는 이 양자 회는 위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은혜의 단비를 넘치도록 받아 촉촉이 젖어있는 축복의 땅 임을 찬란하게 구별시켜 주고 있다고 나는 마음의 눈을 밝히며 울먹거렸다. 십 여 년이란 짧으면 짧다고 할 인생의 여정 속에서 6.25란 광란의 비바람을 보고 또 경험한 나였다. 천둥치고 번개 치며 순식간에 복음자리 둥우리가 파괴되어 파르르 떨고 있는 새들처럼 지배할 수 없는 강한 힘에 휘말려 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러한 바람 속에 속수무책이 되어 자신의 생존에만 급급하여 이웃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삶 도 경험해 보았다. 인생이 너무 고달프고 괴로워 독버섯을 피워내고 지배당할 수밖에 없는 강풍에 복수라도 하듯 오기로 일그러진 얼굴들도 보았고 또 나 자신이 경험했다. 삶 의 구석구석에서 어두운 광풍(狂風)의 파괴로 난무하는 증오와 멸시와 천대와 살인과 생존의 투쟁을 보았다. 그러나 그런 것들과 대조를 이루고 있는 강한 힘과 세력도 보았다. 이 세력 속에 빚어진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천사의 옷을 입고 사랑으로 뜨거워진 가슴과 연민의 정으로 붉게 물든 가슴을 젖히고 찢기고 메마른 심령들을 싸매어 안아주는 것도 보았다. 찢기기도 하고 싸 매임을 받기도 하는 것이 인생인가? 일생을 지나는 동안 찢기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또 감싸주는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어디 있겠는가? 인생은 굴곡의 연속이다. 바람이 불면 잔잔할 때도 있고 비가 오면 멈출 때도 있는 것이다. 산 위에 올라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눈앞에 펼쳐진 전경에 취해있을 지라도 그것은 잠시뿐 영원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영원하다고 착각할 때가 있어 시간을 붙들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인생의 여정을 계속 진행시켜야 하는 것이 생존의 진리이기에 앞으로 나가다 보면 골짜기를 지나고 밤 도 맞으며 바람도 피할 수 없어 그 바람 거슬리며 앞으로 행진해야 할 때도 있고 또 산짐승에게 찢길 때도 있는 것이다.
한 은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