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동란 후 고아들의 비참한 실상을 홀트씨의 눈앞에 전개시킨 그 주인공은 누구였단 말인가?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세계의 한 귀퉁이에 자리한 무명의 조그만 나라 한국의 실상을 병상에 있는 홀트씨에게 보여주면서 그의 존재를 내어 던질 만큼 감동시킨 그 강력한 힘과 비전은 어디서 비롯된 것이란 말인가? 홀트씨는 오직 그리스도의 영으로만 자신이 그 경지에 이끌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을 내어 던질 만큼 강력한 믿음과 용기와 사랑의 근원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 영으로 인하여 인종도 나라도 자신의 건강도 초월하여 “죽으면 죽으리다. 하고 미지의 세계에 뛰어든 것이다. 그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한 가족이란 사실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질병도 물질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그의 주인에게 구했고 그것을 공급받았다. 하나의 농부로서 그의 끓는 심장은 이미 자기의 것이 아니었다. 다만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불타는 정열이 있을 뿐이었다. 오직 자기에게 그 주인의 심장을 심어주시기만 한다면 그의 사랑으로 십자가를 달게 질 수 있었다. 그 십자가를 지고 어린 아이들에게 사랑과 생명을 주는 것만이 그의 남은 여생이 호흡을 계속할 수 있는 의미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도 피곤하게 자신을 내어던지는 환경과 시간 속에서도 소원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그것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쏟아 주는 것이었다. 그 사랑과 정열의 대상인 한국 땅 전쟁터에 버려진 혼혈아들과 불운을 타고난 씨앗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멸시하고 내어버릴 만큼 가치 없는 인간쓰레기로 취급될지라도 홀트 에게 만큼은 생명과 바꿀 만큼이나 소중한 생명들이었다. 그 불타는 사랑은 어린 생명들같이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홀트 라고 이름 하는 자신에게 쏟아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고아들을 자기의 품에 끌어안고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처럼 그들에게 쏟아주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답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한 동기에서 움직이고 있던 홀트씨는 매일 매 순간 아기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바라보면서 그들 속에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자신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 후 하나의 산물이 되어 사회에 뿌려진 혼혈아들 곧 버림받은 아이들은 한인 여자와 유엔군 사이에 태어나 피부색이 다르고 눈과 머리와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사회에서 처절하게 배척당하고 있었다. 6.25 전란은 구석구석 처참한 광경을 초래했다. 폭격으로 곳곳의 다리가 끊겨져 교통수단이 단절되었고 수많은 빌딩과 주택들이 파괴되었다. 남아있는 건물들도 전쟁의 포악(暴惡)을 증언하듯 총탄과 포탄의 흔적들로 물들어 있었고 수 없는 인명을 앗아갔고 또 피해를 입혔다. 더구나 동양 예의지국으로 자랑스러워하던 한국이 전란(戰亂)이란 피할 수 없었던 위기 때문에 외국인들과의 접촉에서 혼혈아들의 탄생을 현실로 받아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실을 이해해 주면서 책임져 주었다면 죄 없는 어린 생명들이 피해를 입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러한 상황적 행위의 합리화를 받아드릴 만큼 마음의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깊이 생각하고 올바른 판단에 이를만한 시간적 흐름도 없었다. 자의이건 타의이건 간에 사생아를 출산시켰다는 사실과 더구나 혼혈아들을 단일 민족의 땅에 뿌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인간 최상의 수치로 취급하고 있던 시절 혼혈아들은 배척을 당할 뿐 아니라 한국인의 땅 에 발을 붙일 곳이 없어야 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므로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다락방에 숨겨서 키우든지 내어다 버리든지 아니면 고아원으로 보내버리게 된 것이다. 어떤 아이들은 물에 빠뜨려 죽였고 쓰레기더미 속에 버려 지기도 했다. 또 고아원 문 앞에 내 던져지기도 했다. 그들은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어머니와 그의 사회로부터도 버림을 받았던 것이다. 거리에서 아이들이 그들을 발견하면 때리고 욕하고 침 뱉고 조롱했다. 부모들이 보여준 대로 철없는 아이들은 생각 없이 말하고 행동했다.

미군들과 접하는 여인들은 “양공주” 라는 멸시의 손가락질을 받았고 그 자녀들은 “양놈새끼들” 이라고  조롱했다. 그들의 행동은 어린 가슴에 비수를 꽂아주고 있었다. 영문을 헤아릴 수 없었던 아이들은 파란 눈과 노랑머리가 저주를 받아야 하고 멸시를 받아야 하는 추한 것이라고 생각 속에 각인시켜놓고 자신의 모습을 싫어했고 자기들을 낳아준 "양공주"라고 놀림 받는 어머니의 신분이 또한 수치스러웠다. 한인 사회에서는 그들의 출신이 부정하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것은 각 가정과 공동체에서 드러내놓고 또는 암암리에 사람들 마음에 심어 주는 한인 문화의 산물이기도 했다. 그러한 영향을 받은 한인 아이들은 혼혈아들 또는 전쟁고아들에게 인간 자애의 가치를 양심의 거리낌도 없이 짓밟고 있었다. 그래서 혼혈의 어린 희생자들은 때로 미군부대 오물처리장의 파리 떼가 들끓는 쓰레기 속에서 발견되기도 했고 개천이나 모래사장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이러한 현실이 사회문제로 등장되면서 가혹한 전쟁의 산물들은 짓밟히며 죽어 갔다. 만약에 홀트씨와 같은 구호자의 손길이 없었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했을 가? 나는 따스한 사랑의 숨결이 돌고 있는 양자 회에 정착할 수 있는 행운을 거듭 감격하고 있었다.


 한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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