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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골 1: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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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24 | | 2010-0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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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너도 이와같이 하라" ( 눅 10:2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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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92 | | 2010-07-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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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자랑 (갈 6: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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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114 | | 2010-0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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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함"은 무엇을 위함인가? (갈 5: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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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162 | | 2010-06-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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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엘리야인가 사렙다 과부인가? (왕상 17: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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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251 | | 2010-0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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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에 기적을 경험하려면 (요 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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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272 | | 2010-06-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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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으로 확신있게 사십니까? (롬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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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270 | | 2010-06-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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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우리의 구원 (행 16: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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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324 | | 2010-0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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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의 정신으로 사십니까? (행 7:5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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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316 | | 2010-0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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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부탁 (요 14: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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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298 | | 2010-0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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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삶 과 죽음 (요 13: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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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316 | | 2010-05-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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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양에서 만왕의 왕으로(계 7: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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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375 | | 2010-05-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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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믿어보려다 낙심하신적이 있으신지요? (요 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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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425 | | 2010-0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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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요 마지막 (계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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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441 | | 2010-0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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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시민의 자격( 행 10:3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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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516 | | 2010-04-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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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무덤이 여러분의 믿음을 더해줍니까? (눅 2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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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467 | | 2010-04-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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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수욕이었나? (사 5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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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468 | | 2010-0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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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림 예수님의 모습 (사 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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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562 | | 2010-0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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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능력 십자가 (고전 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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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638 | | 2010-03-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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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대사가 된 삶 (고후 5: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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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556 | | 2010-02-28 |
예수님의 겉모습 ( 사 53:1-6)
여러분과 저는 어떤 사람에게 눈길을 모으고 갈채를 보냅니까? 세상에서 인기를 끄는 사람들은 왜 그런가요? 무엇인가 흠모할 만한 것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능이 뛰어난다든지, 능력이 많다든지, 잘생겼다든지, 지식이 많다든지, 재물이 많다든지...그런 사람들을 우러러 보고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그런 사람들을 가까이 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 기독교 안에서도 그러한 사람들을 선호합니다. 인기가 많은 지도자, 영력이 강한 부흥강사, 지도력이 뛰어난 선생, 유명한 전도사...그런 사람들 옆에 가까이 가보려고 하고 관심과 존경을 보냅니다.
제가 얼마 전 부흥회에 참석을 했었습니다. 아주 유명한 목사님이 셨습니다. 그분이 설교를 마친 후에 사람들은 우르르 그분 주위에 몰려 그분을 둘러쌓습니다. 그리고 한마디라도 함께 나누기를 바랐습니다. 그중에 아주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 하나가 그 목사님을 끌어안았습니다만 그 기회를 자기만이 차지하고 싶었는지 그 목사님을 한참동안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위 사진기를 가지고 있는 동료에게 명했습니다. “사진을 찍어요. 많이 찍어줘요!”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든 말든 상관 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 유명한 사람의 곁에 있었다는 사실을 영광스럽게 생각한 것이고 그 순간을 아무에게도 뺏기지 않으려고 한 것입니다.
과연 우리 인간의 마음을 그렇게 끌어가는 것이 무엇인지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에 가치관을 두기 때문이 아닌지요? 겉모양을 우리는 중요시 한다는 것입니다. 풍채를 보고 고급 옷을 보고 세련된 모양을 보고 건강미를 보고 아름다움을 보고 성공한 것을 보고 뛰어난 것을 보고 자신감을 보고 능력을 보고...겉모양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고 또 그 값어치를 먹입니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못생긴 사람, 더럽게 보이는 사람, 살결이 검은 사람, 가난한 사람, 찌들어 보이는 사람, 병든 사람, 고생하는 사람, 보잘 것 없이 보이는 사람들이 아닌지요?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할 때 어떤 모습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지요? 유롭의 유명한 화가들이 그려놓은 예수님은 멋진 옷을 입은 금발머리에 푸른 눈 과 이지적인 입술의 미남으로서 인자하고 부드럽고 지혜로워 보이는 천국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아들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저는 어릴 때에 그러한 예수님의 사진을 교회에서 받았습니다. 그 사진은 성경 암송대회에서 일등을 했기 때문에 받은 상금이여서 저는 그것을 애지중지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사진 속에 들어있는 모습이 진짜 예수님의 모습이고 그분의 영 이 그 사진 속에 들어있는 것처럼 여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기도할 때도 그분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저를 안아 주실 분 도 그분이라 상상했습니다. 저와 영으로 함께 동행해 주시는 분도 그분으로 상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 믿는 나를 핍박하든 할머니께서 그 사진을 북북 찢어 불속에 넣었습니다. 저는 악을 쓰면서 울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예수님을 불 속에 태우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제 상상 속에 간직한 예수님에 관한 모습은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아름답고 인자하고 거룩하신 모습,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시며 그 품에 안아주시는 모습...그분이 세마포 두루마기, 홍포며 또는 황금색 두루마리를 입으신 예수님을 상상합니다. 찬양을 드릴 때나 기도를 드릴 때 도 그러한 예수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또 때로는 하늘에 계신 주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합니다. 계시록에서 말씀하시듯이 발에 끌리는 옷을 입으시고 가슴에 금띠를 두르시고 흰 눈처럼 하얀 머리, 불꽃같은 눈, 빛난 주석 같은 발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같은 음성, 해처럼 빛나는 얼굴-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이라고 상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구름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실 것을 상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초림 예수님의 모습을 정확하게, 말씀이 증거하는대로 바라보았는지요? 예수님이 나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예수님에 대해서 예언해 놓았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모두 틀림없이 이루어 졌습니다. 이사야가 53장에 기록해 놓은 예언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오늘날 화가들이 그려놓은 유롭인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실제 모습을 그려놓으면 아마도 사람들은 지금도 외면할지 모르는 모습을 가지고 계셨음을 성경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분은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분은 흠모할만한 아름다움이 없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분은 그래서 멸시를 받고 사람들이 싫어하여 버린바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분은 고생을 많이 한 분입니다. 질고 - 즉 병을 앓는 자를 잘 아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었느냐 하면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고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귀히 여기는 자 가 없이 멸시만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성경이 묘사해 놓은 예수님을 상상해 보셨는지요?
그러나 그분이 그런 모습으로 오신 것은 우리의 비참한 모습을 짊어지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우리의 슬픔을 지고 오셨습니다. 우리의 고난을 대신 받으셨고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림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죄악 때문에 그분이 상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을 징계를 그분이 받으시고 우리에게는 하나님과의 평화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질병을 고쳐주기 위해 그분이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그러한 고난을 자초한 우리들은 양들처럼 동서남북을 분간 못하고 목자 없는 곳에서 죽을 길 을 딸아 갔으므로 그 죽음을 하나님께서는 아들이신 예수께 담당시키신 것입니다. 우리를 대신해 주시기 위하여 오신 그분은 우리의 가장 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오시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근본이 하나님 본체시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본체는 어떤 분이십니까?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고 창조주이시며 전지전능하시고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 됨을 버리시고 땅위에 종 의 모습, 곧 인간을 대신하여 주어주시는 고난의 종으로 오셨습니다. (빌 2:6-8)
여러분, 병든 자, 가난한 자를 위하여 오신 그 분께서는 지금도 가난한자 병든 자 소망 잃은 자 보잘것없는 자들을 부르시고 환영하시고 안아 주시며 새롭게 해 주시고 거룩하고 아름다운 천국백성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그분께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받지 않으시는 분 이 있으십니다. 교만한자, 잘난줄알고 뽐내는 자, 남을 멸시하는 자, 천대하는 자 볼썽 흉하다고 외면하는 자 자기 중심적인 자, 욕심 많은 자, 자기 유익을 도모하는 자, 허영 된 것을 추구하는 자...그런 자들과 오늘도 다투시고 계십니다. 물론 모든 것을 가진 자 일 지라도 마음이 가난하여 주님을 마음에 모신 자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가진 것들 때문에 주님을 외면하고 멸시하며 버리는 자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2000년 전에도 보면 주님께서는 항상 가난한 자 병든 자들의 소망이 되시고 치료자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바리세인들, 제사장들, 서기관들 과 같이 교만하고 잘난 체하며 높은 곳에 군림하고 진리를 외면하는 자들과 싸우셨습니다. 오늘도 영으로 살아계신 주님께서는 그때와 똑 같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역사하십니다. 가난과 고난과 멸시와 천대를 아시는 주님께서는 마음이 상한 자를 기뻐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당신 앞으로 나오는 자를 축복하시고 상상할 수 없는 은혜를 맛보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을 마음 깊은 곳에 똑바로 주시하고 볼 수 있는 영안의 소유자가 돼야 될 줄 믿습니다.
얼마 전에 만화를 보았습니다. 어마 어마하게 지어놓은 호화로운 교회에 거지 하나가 문밖에 있었습니다. 그 거지는 구원을 받고 싶었고 구세주의 은혜를 입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화려하게 차려입고 부자처럼 보이는 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거지는 거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므로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밖에는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거지는 물었습니다.
“아니, 예수님! 당신은 왜 여기 있사옵니까?”
예수님은 대답했습니다.
“나도 그곳을 들어갈 수 가 없구나. 그들이 부르고 찬양하고 섬기는 예수는 내가 아니니라. 라고 대답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겉모양보다 속사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도 지극히 작은 자에게 물 한 그릇 대접하는 것을 자기에게 한 것으로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상한 심령으로 그분 앞에 나오는 사람들을 환영하시고 안아주시고 축복하십니다. 오늘도 아프고 서럽고 병들고 가난하고 멸시받고 천대받는 사람들을 환영하십니다. 세상 것을 다 소유하고 산 다해도 인생의 비참함을 깨닫고 알아 겸손해진 영혼들을 환영하십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이 없으면 불쌍한 사람의 옷을 벗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 자들을 받으시고 신분을 바꾸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세상에 오시어서 우리의 비참한 환경을 뒤바꾸어 놓으신 분이십니다. 재림예수를 기다리며 사는 신앙인들도 오늘은 초림 예수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가장 낮고 천한 자리에 오셨는지를 묵상하시며 우리 자신을 영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 이 돼야 겠습니다. 또한 우리 주위에 우리가 싫어하고 가난하고 병들고 찌든 사람들 한가운데 팔 벌리고 계신 우리 주님을 바라보면서 겸손해 지기를 기원합니다.
한 은 총